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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훈의 신약개발 서랍장③]신약 허가 vs. 해산, 그 기쁨과 수고

  • 등록 2026-09-15 오전 7:00:05
  • 수정 2026-09-15 오전 7:00:05
장성훈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글로벌규제컨설팅사업단 단장 (사진=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장성훈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글로벌규제컨설팅사업단 단장 (사진=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장성훈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글로벌규제컨설팅사업단 단장] 나는 체중이 많이 나가는 편은 아니다. 근육질과는 거리가 멀지만 아직까지는 셔츠를 바지 안에 넣어 입어도 별로 부담스럽지 않다. 주변 사람들과 조금 친해지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평생 살쪄본 적이 있어요?”

“네, 있어요. 연년생 딸 둘을 낳고 나서는 1년 동안 지금보다 거의 10㎏ 더 나갔어요.”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옆에서 듣다가 웃는다.

“자기가 애를 낳았나?”

참고로 나는 남자다. 물론 내가 아이를 낳은 것은 아니다. 다만 미국에서 연년생으로 태어난 두 아이를 아내 혼자 감당할 수는 없었다. 퇴근 후와 주말에 육아를 함께하다 보니 2년 가까이 운동을 거의 하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체중도 늘었다. 내가 출산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출산 후 체중 관리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해산의 기쁨’도 남자인 내가 알 수 있을까?

해산이 기쁜 것은 단지 아이를 얻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랜 임신 기간의 수고와 출산의 고통을 지나 마침내 아이를 품에 안기 때문에 그 기쁨이 더욱 크다. 그러니 해산의 기쁨은 그 모든 과정을 몸으로 감당한 엄마만이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여성의 특권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나는 그 마음을 아주 조금은, 물론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엘레바 테라퓨틱스(Elevar Therapeutics)에서 근무하면서 나는 리라푸그라티닙(lirafugratinib) 신약허가신청서(New Drug Application·NDA)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하는 일을 마지막으로 하고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KoNECT)으로 옮겼다. 리라푸그라티닙은 특정 유전자 변이가 있는 담관암 환자를 대상으로 개발한 항암제다. FDA는 이 신청을 우선심사 대상으로 지정했고, 2026년 9월 27일을 심사 목표일로 정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승인되면 ‘FDA 승인에 성공한 항암 신약’이라는 기사가 쏟아질 것이고, 승인되지 않으면 ‘허가 실패’라는 제목이 신문과 인터넷을 채울 것이다. 나는 이미 회사를 떠났지만 당연히 승인받기를 바란다. 어쩌면 20여 년 전 두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렸을 때처럼 마음 한구석이 조심스럽고 간절하다.

그러나 내가 ‘해산의 기쁨’을 떠올리는 것은 승인이라는 결과 때문만은 아니다. 그 NDA를 제출하기까지 겪었던 수고와 고통을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NDA 제출은 막대한 양의 자료를 모아 서류로 만드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회사가 가진 과학과 경험, 판단을 모두 모아 그 시점에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을 완성하는 일이다.

NDA에는 임상시험 결과뿐 아니라 비임상 독성시험, 임상약리, 통계분석, 제조공정과 품질관리, 안전성 자료 등 신약 개발 역사가 거의 빠짐없이 담긴다. 수백 개의 문서가 서로 맞아야 하고, 한 문서 숫자는 다른 문서 표와 일치해야 한다. 분석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지, 부족한 자료를 어떻게 설명할지, FDA가 제기할 질문에 어떤 근거로 답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문제는 NDA에 ‘100% 완성’이라는 순간이 없다는 것이다.

자료를 들여다보면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 문장을 고치면 새로운 질문이 생기고, 표 하나를 수정하면 연결된 여러 문서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조금만 더 검토하면 더 정확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고, 며칠만 더 있으면 설명을 보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완벽을 기다리다 보면 제출일은 끊임없이 늦어진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날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제출한다.”

그 약속이 있어야 일이 끝난다. 그렇다고 날짜를 지키기 위해 대충 마무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제출 시점이 다가올수록 일은 오히려 더 많아진다. 마지막 순간에 발견된 문제일수록 고칠 시간은 짧고, 잘못 판단했을 때의 영향은 크다.

리라푸그라티닙 NDA를 준비하던 마지막 몇 주 동안 밤을 꼬박 새운 날이 열흘을 넘었다. 새벽에 잠깐 눈을 붙였다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고, 미국과 유럽의 팀원들과 시간대를 이어가며 문서를 검토했다. 한 지역의 팀이 일을 마치면 다른 시간대의 팀이 이어받았다. 이메일과 회의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고, ‘최종본’이라는 이름의 파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 만들어졌다.

누군가는 임상자료를 확인했고, 누군가는 통계분석을 다시 검토했다. 누군가는 제조와 품질 자료를 붙들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문서 전체에서 서로 맞지 않는 숫자와 표현을 찾아냈다. 제출 버튼을 누르는 순간까지 각자 맡은 조각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그 과정이 유난히 힘들었던 데에는 앞서 경험한 실패의 기억도 있었다.

엘레바는 리보세라닙과 캄렐리주맙 병용요법을 절제 불가능하거나 전이된 간세포암의 1차 치료제로 허가받기 위해 NDA와 생물의약품 허가신청서(Biologics License Application·BLA)를 FDA에 제출했다. 임상시험에서는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지만 허가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리라푸그라티닙 NDA를 준비할 당시 이 병용요법은 이미 두 차례 FDA로부터 보완요구서(Complete Response Letter·CRL)를 받은 상태였다. 이후 2026년 7월 세 번째 CRL까지 발행됐다. 제조시설과 품질 문제가 중요한 이유였다.

신약의 효과가 좋아도 의약품을 일관된 품질로 생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면 허가받을 수 없다. 좋은 임상자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 신약개발에서는 어느 한 부분의 부족함이 전체의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보여준 경험이었다.

그래서 리라푸그라티닙 NDA를 준비할 때는 더욱 두려웠다.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지금 보이지 않는 문제가 어디에서 나타날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앞선 경험이 있었기에 더 잘 준비할 수 있었지만, 바로 그 경험 때문에 걱정도 더 많았다.

마침내 NDA가 제출되던 날 기쁨보다 먼저 찾아온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끝났다는 안도감. 오늘 밤은 더 이상 문서를 열어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여기까지 해냈다는 안도감이었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것을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내보낸 기분이 이런 것일까 싶었다.

물론 NDA 제출은 출산과 다르다. 더구나 실제 출산의 고통을 겪지 않은 내가 그 둘을 같은 것처럼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오랜 시간 한 가지 일에 매달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온 힘을 다한 뒤 마침내 손에서 놓아 보내는 마음에는 어딘가 닮은 데가 있는 것 같다.

이제 결정은 FDA 몫이다.

승인되면 많은 사람이 성공을 이야기할 것이다. 승인되지 않으면 실패의 이유를 찾을 것이다. 결과가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신약개발은 결국 환자에게 약을 전달하기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인과 불승인이라는 한 단어만으로 그 과정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 하나의 NDA 뒤에는 수많은 사람이 보낸 밤과 고민, 충돌과 결정, 그리고 셀 수 없이 다시 고친 문서들이 있다. 성공한 허가에도 그런 과정이 있고, 실패한 허가에도 그런 과정이 있다.

FDA가 목표일인 9월 27일 또는 그 전에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결과가 무엇이든, 나는 그 NDA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애썼는지를 기억한다. 그리고 좋은 소식이 찾아온다면 멀리서나마 그들과 함께 기뻐하고 싶다.

아이를 낳지는 않았지만 출산 후 체중 관리의 어려움을 조금은 알게 됐듯이, 나도 이제 해산의 기쁨을 아주 조금은 알 준비가 돼 있다.

기쁨은 결과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품고, 고통을 견디고, 마침내 세상에 내보냈다는 데서도 온다. 그리고 그 수고가 컸기에 좋은 결과가 가져다줄 기쁨은 더욱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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