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지완 기자] 암은 행정기관 승인 일정에 맞춰 재발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내 첨단재생의료 치료계획 1호로 승인된 바이젠셀 ‘VT-EBV-N’을 기다리는 환자들은 암과 싸우는 동시에 규제의 시간과도 싸우고 있다.
 | | 김지완 이데일리 바이오플랫폼센터 차장(과학기술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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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T-EBV-N은 EBV 양성 림프절외 NK/T세포 림프종 환자가 항암치료를 통해 완전관해에 도달한 뒤 재발을 막기 위해 투여하는 세포치료제다. 환자 본인 혈액에서 EBV를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T세포를 추출해 배양·증식한 뒤 다시 정맥으로 투여한다.
치료 과정도 단순하지 않다. 4주 동안 매주 한 차례 투여하고, 4주간 휴약한 뒤 다시 4주 동안 주 1회 투여한다. 총 8회, 약 12주에 걸쳐 치료가 진행된다. 한두 번 주사를 맞고 끝나는 치료가 아니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투약 시점이 중요하다. 의료진은 “완전관해 직후가 가장 중요하다”며 “보통 3개월 안팎을 ‘윈도 기간’, 즉 재발 방지 치료의 골든타임으로 본다. 암세포가 씨앗 수준일 때 개입해야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지난 4월 말 치료계획 승인을 받은 VT-EBV-N의 실제 환자 투약이 이르면 10월 초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승인과 투약 사이에 약 6개월의 공백이 생기는 셈이다. 완전관해 후 3개월이 중요하다는데 행정절차에만 그 두 배의 시간이 소요된다.
현재 치료를 원하는 환자 4명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첨단재생의료 관련 부서 승인을 받았다고 곧바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관련 기관에 각각 신청서를 제출해 후속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후 병원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사도 통과해야 한다.
환자 입장에서 더욱 조바심이 날 수 밖에 없는 것은 해당 절차들이 동시에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병원 IRB는 정부의 최종 승인서가 있어야 서류를 접수할 수 있다. 정부 행정절차에 약 4~5개월, IRB 심사에 다시 1~2개월 이상이 걸릴 수 있다. 한 기관이 심사하는 동안 다른 기관은 기다리고, 그사이 환자의 골든타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물론 세포치료제 안전성과 제조·품질 관리, 환자 보호를 위한 심사는 철저해야 한다. 첫 사례인 만큼 가이드라인이 부족하고 담당자들이 책임 문제를 우려할 수 있다는 사정도 이해한다. 그러나 신중함과 지연은 같은 말이 아니다.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정작 환자의 치료 기회를 빼앗는다면 규제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물어야 한다.
담당 공무원이나 심사위원 가족이 지금 재발 위험 속에서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면, 과연 똑같이 “절차상 어쩔 수 없다”며 6개월을 기다리게 할 수 있을까. 가족에게는 하루가 급하면서 환자에게는 몇 달을 감내하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신중한 행정이 아니라 무책임한 행정이다.
첫 치료제라는 이유로 환자가 제도 정비 비용을 떠안아서는 안 된다. 관계 부처와 심평원, 병원 IRB가 치료계획 승인 단계부터 자료를 공유하고 심사를 병렬로 진행해야 한다. 첫 사례이기 때문에 절차를 더 쌓을 것이 아니라, 전담 창구와 처리 기한을 마련해 더욱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첨생법은 치료법이 없는 중증·희귀질환 환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보건복지부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심의위원회’가 지난 4월에 치료를 허용했는데 환자가 실제 치료를 받는 것은 10월이라면, 그 사이 존재하는 것은 치료가 아니라 규제뿐이다. 암보다 느린 행정으로는 어떤 첨단 치료제도 환자를 살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