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미리 기자] 국내 바이오 기업 상당수가 연구개발, 시설 등에 투자하고 남은 돈을 모두 예·적금으로 운용하고 있다. 헬릭스미스를 비롯한 일부 바이오 기업들이 고위험 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어 논란이 된 후 자금운용이 보다 보수적으로 이뤄지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일 이데일리가 코스피·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100개 제약·바이오사를 대상으로 6월 말 기준 외부자금 조달자금 잔액을 조사한 결과, 39곳이 미사용자금을 금융상품에 넣어둔 것으로 나타났다. 신약 개발에 10여년이 걸리는 산업 특성상 제약·바이오사들은 기업 운영에 필요한 자금 상당수를 외부에서 조달한다. 미사용자금은 기업이 연구개발, 시설 등에 투자하고 남았거나 향후 투자를 위해 남겨놓은 외부조달 자금을 말한다.
조사대상 39개곳 중 23곳은 미사용자금 전부를 예·적금에 넣었다. 이들은 주로 3~12개월의 정기·보통예금 상품을 이용했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950210) 4316억원,
SK바이오팜(326030) 2118억원,
네오이뮨텍(Reg.S)(950220) 1650억원(6월 말 환율 적용),
엔지켐생명과학(183490) 1043억원,
이수앱지스(086890) 800억원,
안트로젠(065660) 550억원,
진원생명과학(011000) 405억원 등이다.
예·적금과 채권, 사모펀드, 주식 등을 두루 활용해 미사용자금을 운용하는 업체는 15곳이었다. 이중
헬릭스미스(084990)(1858억원),
메드팩토(235980)(1336억원),
에이프로젠제약(003060)(1034억원),
지놈앤컴퍼니(314130)(934억원),
국전약품(307750)(454억원),
에이치엘비생명과학(067630)(431억원),
유바이오로직스(206650)(360억원),
바이넥스(053030)(275억원),
티앤알바이오팹(246710)(174억원) 등 9곳은 예·적금 비중이 50%가 넘었다.
특히 헬릭스미스는 미사용자금 90%를 예·적금, 나머지는 사모펀드로 운용하는 중이다. 이 회사는 작년 10월 지난 5년간 파생결합증권(DLS) 등 68개 고위험 금융상품에 2643억원을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낸 사실이 알려져 질타를 받은 바 있다. 다른 기업들은 대부분 중금채, 전단채 등 채권을 활용했으나 티앤알바이오팹은 사모펀드, 에이치비생명과학 펀드예치금으로도 자금을 운용했다.
나머지 6곳은 예·적금 아닌 금융상품 비중이 높았다. 바로
유틸렉스(263050)(697억원),
셀리버리(268600)(524억원),
압타바이오(293780)(496억원),
코아스템(166480)(478억원),
고바이오랩(348150)(255억원),
셀리드(299660)(381억원)다. 고바이오랩, 셀리드는 예 ·적금에 넣지 않은 자금을 모두 채권으로 운용했다. 유틸렉스, 셀리버리 등은 사모펀드와 채권을, 압타바이오는 채권과 주식(삼진제약 보통주 79억원)을 각각 혼용했다.
예·적금 비중이 0%인 곳은
차바이오텍(085660) 1곳 뿐이었다. 이 회사는 외화KP물, 일임형Wrap 등 채권으로 미사용자금 579억원을 운용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임상에 쓰기 위해 조달한 돈인 만큼 미사용자금을 주로 원금손실 우려가 없는 예·적금으로 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또 과거 일부 바이오사들이 고위험 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손실은 내면서 논란이 된 것도 영향이 있다. 이후 많은 주주들이 바이오사들에 미사용자금 운용처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실제 이들의 미사용자금 운영내역도 올해부터 공시되기 시작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월 기술특례 상장기업에 대한 정보 제공을 강화하기 위해 재무사항 예측치와 실적비교, 미사용자금 운용내역 등을 공시하도록 했다. 공시서류 작성일 기준 사용하지 않은 공·사모 자금이 있는 경우 기재해야 한다. 이에 기업들은 미사용자금 보관방법, 계약기간, 실투자기간 등을 구체적인 내용을 공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