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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개발은 성공하면 막대한 부를 안겨주지만 장기간 천문학적인 금액투자가 필수적이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개의 신약을 개발하는 데 드는 평균 비용은 약 3조2712억원이다. 임상 3상까지 성공 확률도 1% 미만이다. 이런 허들을 넘을 수 있는 대안으로 인공지능(AI)이 떠오르고 있다. AI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 후보 물질을 식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최근 AI 기술로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다고 보고 NAM 기술을 강조했다. 이 기술은 동물 없이 신약의 독성, 약효를 평가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이다. 이런 격변의 시기에 국내 AI신약개발 기술은 어디까지 왔을까. 팜이데일리는 AI를 통한 신약개발의 국내 기술 현황과 해외와 경쟁력을 분석해봤다. [편집자주] [이데일리 김승권 기자]
“빅딜이 없다.” 국내 AI신약개발 기업 관계자는 현재 한국 상황을 이렇게 평가했다. 미국에선 AI를 통한 후보물질이 조 단위로 계약되는 사례가 늘어나는데 왜 국내에선 AI신약개발 기업과 제약사간 연구 협력이 본계약 체결로 이어지지 않는 걸까.
협업은 많은데 본계약이 없다?...왜 24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AI신약개발 기업은 2015년부터 나오기 시작해 2018년 약 50여개사로 늘어났다. 이후 약 23개 기업이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시리즈B 단계에 간 기업도 상당수였다. 2023년에는 AI신약개발 기업과 전통 제약사의 협업이 88개에 달하며 정점에 이르렀다. 온코크로스는 동화약품, 대웅제약, JW중외제약 등과 공동 연구 협약을 맺었고 스탠다임은 큐라클과 협력했다. 또한 아론티어는 HLB와 갤럭스는 LG화학과 협력을 발표하는 등 연구 계약 소식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후 결과는 처참하다. 연구 협약 이후 본계약 격(업프론트 금액을 포함한 계약)인 팔로잉 계약 건이 거의 없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온코크로스가 최근 JW중외제약과 체결한 팔로잉 계약 정도가 있지만 이마저도 계약금액을 밝히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국 AI신약개발 기업은 후보 물질을 빅파마에 판매한 사례가 상당히 많다. 빅파마 일라이릴리와 노바티스는 작년 하반기 구글 딥마인드의 신약 개발사 아이소모픽랩스와 각각 최대 2조3000억원, 1조6000억원 규모의 AI 기반 약물 개발 협력 계약을 맺었다. 반환 의무가 없는 선급금만 8250만달러(약 1085억원)에 달한다. 설립 후 단 2년 만에 거둔 성과다. 특허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보건산업진흥원 데이터를 보면 2018년 이후 누적 AI신약개발 분야 국내 특허는 2023년 기준 약 35건으로 미국(215건)에 크게 뒤진다. 기술적 진보가 더딘 상황인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AI신약개발 기업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 후보물질 개발 플랫폼 기반 AI신약개발 회사들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후보물질 발굴해주는 플랫폼이라면 5개 중에 3개를 전임상에서 성공시키면 플랫폼 가치가 커지겠지만 아직 증명해 낸 회사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 국내 AI신약개발사 특징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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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처럼 초기 국내 AI신약개발 기업들은 후보물질 발굴 플랫폼에 집중하는 사례가 많았다. KDB미래전략연구소에 따르면 AI기반 신약개발 비즈니스는 △정보수집 △질병기전 발견(단백질 구조분석) △바이오마커 발굴 △약물재창출/적응증 확대 △후보물질 발굴 △유효성 검증 △약물 설계 △전임상 등으로 이어진다. 이 중 후보물질 개발 기업은 10곳 이상(2021년 기준)이었다. 스탠다임, 아론티어, 에이조스바이오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하지만 이 분야에 아직 빅딜 사례가 없다는 것이 해당 비즈니스가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임재창 히츠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후보물질이든,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판매하는 방식이든 그 자체가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결국 핵심은 후보물질이든 선도물질이든, 약물재창출이든 비임상에서 성과가 나와야하는데 거기서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 해당 비즈니스의 방향성이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후보 물질 발굴은 신약개발의 초기 단계의 프로세스로 이후 장기나 단백질 등과 어떤 상호작용을 할지, 어떤 면역반응을 일으킬지를 수많은 시행착오를 넘어서야한다. 좋은 후보물질을 AI가 발굴할 수 있지만 그것이 해당 적응증에 맞는 약물 차원 테스트를 통과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인데 이 허들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 작년 AI신약개발 기술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로제타폴드 올 아톰을 기반으로 항암제 신약 후보물질 1490만 개를 생성했지만 약물 가치가 있는 건 0.1% 미만이다. 그는 신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후보물질을 잘 만드는 원리를 증명해 노벨상을 받은 바 있다.
정제된 임상 데이터 부족... 국내 제약사의 보수적인 계약 관행도 한몫? 문제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아니라 후보물질을 잘 발굴하는 정교한 AI가 없이 때문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선 선행 문제로 정제된 데이터 부족과 전문 인력 부족을 원인으로 꼽는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신약개발에 필요한 국내 유전체나 임상 데이터는 폐쇄된 환경에서만 접근이 가능한 경우가 많았지만 미국은 공개 데이터 수가 이미 압도적이다. 실제 올 3월 기준 한국의 ‘국가통합바이오 빅데이터’의 유전체 데이터 수는 약 3000개에 그쳤지만 미국은 84만개가 넘는다.
인력과 인프라도 부족도 문제다. AI 전문 인력의 경우 미국은 2022년 10년 전보다 4배 정도 인력이 늘어났지만 한국은 AI인력 이동 지수가 -0.42 포인트 정도로 OECD(국제경제협력기구) 국가 중 4번째로 인력 유출이 많았다.
익명의 한 대학 교수는 “미국의 경우 일종의 데이터 분석 장치인 GPU, CPU 등을 수백개씩 공동으로 관리하며 연구실이 자유롭게 쓰고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반면 한국은 각 연구실이 수십 개의 데이터 분석 장치를 관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대규모 분석을 진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 비즈니스 단계별 AI신약개발 회사 리스트 (데이터=KDB미래전략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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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AI신약개발 주 고객인 국내 제약사들의 보수적인 의사결정 구조도 영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에 따르면 AI신약개발은 결국 제약·바이오 기업을 대상으로 한 B2B(기업 대상 비즈니스) 사업이다. 정형화된 물질을 발굴해 판매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각 기업의 니즈에 맞는 후보물질을 함께 찾아가는 방식으로 비즈니스가 전개된다.
국내의 경우 AI신약개발 기업이 물질 효능을 증명한 사례가 많지 않아 초기 계약이 업프론트가 없는 소규모 계약인 경우가 대다수다. 이 경우 공동연구 협약이 체결되지만 두 기업 모두 적극적이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AI신약개발 기업의 경우 개발 연구실이 없기 때문에 제약사 연구 프로세스를 따라 비임상이 진행된다. 주체적인 결과를 내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계약 규모가 커지려면 서로 간의 믿음을 바탕으로 성과가 나오면 결과물을 나눠가지자는 약속이 되어야 한다. 구글 아이소모픽랩스처럼 조 단위 계약이 된다는 건 2상 성공 시 3대 7 수익배분 약속과 같은 확실한 보증이 있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국내 제약사는 그런 식의 계약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성과물을 나누는 것이 보수적이고 그러니 AI신약개발사도 그 건에 올인하기 힘든 여러 구조가 있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