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새미 기자] 먹는(경구용) 비만치료제의 상용화가 높은 부작용 비율과 중도 탈락률로 인해 또 다시 벽에 부딪혔다. 릴리와 바이킹의 실망스러운 임상 결과에 주사제형 비만치료제 선호가 강화되는 가운데, 후발 주자에는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VK2735, 99%가 부작용 경험하며 26%가 투약 중단 바이킹테라퓨틱스(Viking Therapeutics)는 19일(현지시간) 경구용 비만치료제 ‘VK2735’의 임상 2상(VENTURE-Oral Dosing) 톱라인 결과를 발표했다. 1차, 2차 평가지표를 모두 달성하며 평균 최대 12.2%(약 12.1㎏)의 체중 감소 효과를 확인했지만 99%에 달하는 부작용 비율과 높은 치료 중단율(26%)로 인해 상업성에는 의구심이 일었다. 이에 바이킹의 주가는 전일 대비 17.73달러(42.12%) 폭락한 24.36달러(약 3만4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 바이킹 테라퓨틱스의 경구용 비만치료제 임상 발표 이후 주가 급락 이미지 (사진=ChatGP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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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임상의 톱라인 결과에 따르면 VK2735를 13주간 매일 1회 복용한 피험자는 기존 체중 대비 평균 최대 12.2%(약 12.1㎏)의 체중이 감소하며 1차 평가지표를 달성했다. 2차 평가지표인 5% 체중 감량 달성자 비율은 VK2735 투약군에서 최대 97%였으며, 위약군은 10%였다. 10% 이상 체중 감량 달성자 비율도 80%로 위약군(5%) 대비 높았다.
VK2735의 위장관 관련 이상 반응은 전체 참가자의 약 99%에서 나타났으며, 경증~중증도(mild to moderate) 수준이었다. 주로 메스꺼움, 구토, 설사 등이 보고됐다. 투약군의 치료 중단율은 평균 26%(52/200명)으로 최고용량(120㎎ 투약군)에서 가장 높은 38%로 나타났다.
 | VK2735의 치료 중단율은 최고용량(120㎎ 투약군)에서 38%를 기록했다. (자료=바이킹 테라퓨틱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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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K2735의 부작용으로 인한 치료 중단율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는 일라이 릴리의 경구용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신약 ‘오포글리프론’(orforglipron)과 비교하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앞서 오포글리프론도 임상 3상 결과 치료 중단 비율이 높게 나타나 주가가 14.14% 급락했지만 오포글리프론의 치료 중단 비율은 가장 높게 나타난 36㎎ 투약군에서도 10.3%였다. 당시 시장에서는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위고비의 성분)의 치료 중단 비율 3.4%에 비해 높다는 이유로 실망감을 드러냈다.
시장에서는 VK2735의 높은 치료 중단율로 인해 상업적 성공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분위기다. 이날 경쟁사인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 주가는 각각 0.74%, 1.92% 오르며 반사 이익을 봤다. 바이킹과 같이 펩타이드 기반 비만치료제를 주사제와 경구제로 개발 중인 멧세라(Metsera)의 주가는 0.82% 하락하며 약세를 보였다.
릴리의 9조원 규모 채권 발행…M&A 가능성 ↑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릴리가 지난 18일 총 67억5000만달러(약 9조4500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는 점이다. 사상 최대 규모의 회사채일 뿐 아니라 초장기물인 40년 만기 채권까지 포함돼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는 미국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시도로, 장기적인 자금 조달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되고 있다. 일각에선 이 자금을 활용해 바이킹을 인수하려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지만 19일 VK2735의 임상 결과로 인해 이 같은 예측은 힘을 잃었다.
릴리의 드라이 파우더가 다른 업체를 향할지가 관건이다. 우선 미국 나스닥 상장 바이오텍을 기준으로는 멧세라가 유력 후보로 지목된다.
경구용 비만치료제를 개발 중인 바이오텍 중 나스닥 상장사로는 바이킹뿐 아니라 멧세라, 스트럭쳐 테라퓨틱스(Structure Therapeutics), 턴스 파마슈티컬스(Terns Pharmaceuticals) 등이 있다. 시총으로 줄 세워보면 멧세라(33억1700만달러), 바이킹(27억3900만달러), 스트럭쳐(10억8300만달러), 턴스(5억7300만달러) 순이 된다.
이 중 스트럭쳐와 턴스는 저분자화합물(small-molecule) 기반 GLP-1 수용체 작용제를 개발하고 있어 릴리가 개발한 오포글리프론과 개발 방식이 겹친다. 따라서 릴리가 펩타이드 기반 경구용 비만치료제를 개발 중인 바이킹과 멧세라에 더 주목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됐는데 이번 일로 멧세라 인수 가능성이 한층 부각됐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GLP-1 시장이 더 커지면 빅파마가 인수합병(M&A)을 안 할 수 없다”면서 “빅파마들이 경쟁적으로 비만치료제 파이프라인을 라이선스인하거나 아예 회사를 사들이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주목할 바이오 기업은? 국내에서도 릴리와 협업 중인 펩트론(087010)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펩트론은 지난해 10월 릴리와 ‘스마트데포’ 플랫폼 기술 평가 계약을 체결하며 본계약이나 기술이전 성사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인벤티지랩(389470)과 지투지바이오(456160)는 베링거인겔하임과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하고 펩타이드 장기지속형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이들 업체는 모두 미립구를 활용한 약물전달시스템(DDS)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릴리에 이어 바이킹의 임상 결과를 통해 경구용 비만치료제의 개발이 어렵다는 것이 재확인되면서 대체재인 주사제 선호 심리가 강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주사제형 비만치료제의 주기를 늘리는 장기지속형 주사제 기술을 보유한 업체로 관심을 돌리는 투자자들도 생기고 있다.
경구용 비만치료제 후발 주자에 새로운 기회가 열린 것이라는 분석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측면에서는 멧세라와 협업 중인 디앤디파마텍(347850), 일동제약(249420)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디앤디파마텍은 2023년 4월 멧세라에 GLP-1 계열 경구용 펩타이드 비만치료제 ‘DD02S’와 ‘DD03’의 권리를 총 5500억원 규모(선급금 130억원 포함)로 기술이전했다. 이후 추가적인 기술이전 계약, 공동개발 계약 등을 체결하면서 디앤디파마텍이 멧세라에 기술이전한 품목은 7개가 됐다.
멧세라의 핵심 파이프라인 3개 중 하나인 경구용 비만치료제 ‘MET-224o’는 디앤디파마텍의 ‘오랄링크’(ORALINK) 기술이 적용된 파이프라인이다. 연내 인체 체중 감량 효능 결과를 확인할 예정이며, ‘MET-097o’와 병용 임상 1상 진입도 계획하고 있다. 멧세라는 내년에 디앤디파마텍 도입 파이프라인 중 최소 2개의 임상을 개시할 방침이다.
일동제약은 신약개발 자회사 유노비아를 통해 GLP-1 기반이 아닌 저분자 화합물로 경구용 비만치료제 ‘ID110521156’를 개발하고 있다. 일동제약은 지난 6월에는 미국당뇨병학회(ADA)에서 ID110521156의 임상 1상 결과를 발표했다. 이달 말 ID110521156의 임상 1상 톱라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구용 비만치료제 개발에 있어서 효능을 최대화하기보다는 치료 중단율과 부작용을 얼마나 최소화하고 복용 편의성을 높이느냐가 관건이 된 것 같다”며 “장기 내약성을 먼저 잡아야 경구용 비만치료제의 상업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