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새미 기자] 금융당국이 상장유지 기준을 강화한 개선안을 내놨지만 바이오업계에선 시가총액 600억원(코스닥시장 기준)을 넘기면 매출요건을 면제하는 규정이 생기자 한시름 놓은 분위기다. 한편으로는 관리종목 관련한 개선안이 아직 공개되지 않아 긴장을 놓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시총 600억 넘기면 매출 무관하게 상장 유지…“본업 집중 가능해져”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IPO 및 상장폐지 제도 개선 공동 세미나’를 열고 상장폐지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개선안의 골자는 시가총액과 매출액 기준을 상향 조정해 상폐 요건을 강화하는 것이다.
|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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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상장폐지 시가총액 요건이 코스피(유가증권시장) 기준 현행 50억원에서 2026년 200억원→2027년 300억원→2028년 500억원으로 상향된다. 코스닥시장은 현행 40억원에서 2026년 150억원→2027년 200억원→2028년 300억원으로 올린다.
매출액 요건은 2027년부터 적용된다. 코스피에서 현행 50억원이었던 매출 기준은 2027년 100억원→2027년 200억원→2029년 300억원으로 상향된다. 코스닥에선 현행 30억원에서 2027년 50억원→2027년 75억원→2029년 100억원으로 상향된다. 단 코스피의 경우 시총 1000억원 미만, 코스닥은 시총 600억원 미만일 경우 매출 요건이 적용된다.
올 하반기부터는 감사의견 2회 연속 미달(한정, 부적정, 의견거절 등)인 상장사는 즉시 상장폐지된다. 이전에는 감사의견 적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개선 기간을 부여해 상폐 심사가 장기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는 4월부터 코스피 상장사의 상폐 절차에 드는 기간은 최장 4년에서 2년으로, 코스닥 상장사의 상장폐지 절차는 3심제에서 2심제로 단축된다.
바이오업계에서 가장 주목했던 규정은 매출액 요건이었다. 매출요건이 강화되긴 했지만 시총에 따른 예외규정이 추가되면서 시총만 일정 수준(코스피 1000억원·코스닥 600억원) 이상 유지되면 매출과 무관하게 상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에 대부분의 바이오기업들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매출 요건은 바이오기업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기준이었다. 해당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본업과 무관한 사업에 진출하는 경우도 생겼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사인 셀리드(299660)는 지난해 베이커리업체 포베이커를 인수해 흡수합병하고 올리패스(244460)는 부동산 투자업체를 사들여 합병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기업들이 상장 유지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연구와 무관한 사업에 억지로 진출해야 하는 어려움, 신약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일에 역량을 쏟아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며 “이번 정책으로 인해 신약 연구에만 집중하면서 형식적인 매출 기준보다는 기업 본연의 가치 향상에 매진할 수 있어서 긍정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긴장 늦추긴 일러…바이오 독소조항 ‘법차손’ 남았다아직 관리종목 요건 개선안에 대해 공개되지 않은 만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었다. 코스닥 관리종목 지정 사유 중 대부분의 바이오·헬스케어 기업들이 맞추기 어려워하는 요건은 바로 법인세차감전계속사업손실(법차손) 요건이다.
현행 코스닥 관리종목 지정 사유에는 △연매출 30억원 미만 △최근 4년 연속 영업손실 발생 △자본잠식률 50% 이상 △최근 3년간 2회 이상 법차손이 자본의 50% 초과 등이 있다. 관리종목 지정 후 해당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면 상폐 심사 대상에 오른다.
한국바이오협회가 국내 바이오 기업 170개사를 상대로 ‘바이오 기업 특례상장 제도 개선 방안’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법차손 요건 완화(127개사·74.7%)가 산업 활성화를 위한 최우선 개선 과제로 꼽혔다. 실제로 바이오업계에선 법차손 기준 완화 등 제도 개선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기업에 한해 현재 비용으로 인식되는 R&D 비용을 법차손에서 제외해줄 필요가 있다”며 “상폐를 피하려면 R&D 비용을 줄여야 하는 형국”이라고 토로했다. 이승규 바이오협회 부회장도 “관리종목 관련해서 유예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하는 시점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얘기가 없었다”면서 “단기적으로는 법차손 이슈가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시총 요건으로 인해 무리한 주가 부양에 나서는 바이오·헬스케어 기업들이 생기면서 업계 전반의 신뢰도를 떨어트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업계 관계자는 “매출요건이 안 되면서 시총 기준도 미달한 업체의 경우 유상증자나 무상증자 등 주식수를 늘려서 시총을 늘려가는 식으로 꼼수를 부려서 살아남으려고 할 것”이라며 “그러면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만 더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해 3분기 말 별도재무제표 기준 매출이 30억원 미만이면서 22일 시총이 600억원 미만인 업체로는 카이노스메드(284620)(522억원), 에스씨엠생명과학(298060)(309억원), 젠큐릭스(229000)(302억원), 피씨엘(241820)(277억원), 올리패스(126억원) 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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