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임정요 기자] 글로벌하게 가장 큰 제약시장인 미국에서 대규모 약가 인하 행정명령을 발표했지만, 실제 입법으로 이어지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는 업계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내 업계는 신중한 관망세다. 이번 행정명령은 특히 고가의 오리지널 의약품을 가진 빅파마(Big Pharma)와 중간단계에 있는 보험사, 유통업체 등이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이에 따른 연쇄반응으로 국내 제약 및 바이오시밀러 회사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인 산업에 파괴적인 내용이라 실현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사진=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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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장 비중 높은 회사들 타격? 12일(현지시간)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해외 의약품에 대한 보조금을 멈출 것이며 약가를 59~90%까지 낮추겠다는 골자의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미국 내 유통되는 의약품이 타 국가 대비 비싼 가격에 판매되는 점을 지적, 제약회사들이 미국을 최혜국(Most Favored Nation·MFN)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표다. 향후 30일 내에 미국 보건복지부 HHS(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가 약가 인하 대상 의약품을 추려내 가격을 통보한다는 계획이다.
진전이 없을 경우 강제적 MFN 약가 규칙 제안, 저렴한 해외 약 수입 허용, 직접소비자판매(Direct-to-consumer) 유통경로 검토, 해외 약가 억제국가(주로 유럽) 조사 및 무역보복을 시사했다. 구체적으로는 FDA 승인 취소, 수출입 제한 등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이 같은 발표에 직격탄을 맞는 곳은 고가의 의약품을 판매하는 빅파마다. 이들이 약가를 낮추게 되면 전체적으로 제약회사들의 매출에 타격이 예상되며, 약가경쟁에 따라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저렴하게 판매해야 하는 바이오시밀러 시장도 쪼그라들 것으로 전망된다.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국내 회사로는 셀트리온(068270), 삼성바이오에피스, 그리고 미국 시장 매출 비중이 큰 SK바이오팜(326030) 등이 언급된다.
이번 행정명령과 관련해 셀트리온 관계자는 “미국에서 약 가격의 상당부분은 리베이트로 형성된다. 바이오시밀러의 장점인 가격경쟁력을 환자에게 전달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오리지널 가격이 낮아지면 바이오시밀러 가격도 그에 따라 낮아지겠지만, 중간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기존의 리베이트 허들이 사라진다면 궁극적으로 바이오시밀러의 마진율이 올라갈 것으로 본다”고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미국에서 헬스케어에 쓰이는 비용이 막대하다. 이번 행정명령은 이를 줄이려고 하는 것이라 결국에는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가격경쟁력을 갖춘 바이오시밀러를 우대하지 않을까 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당사는) 정책이 어떻게 변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SK바이오팜 관계자 또한 “아직은 여러 절차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PBM(미들맨) 없이 직판으로 가게 되면 그것에 따른 비용이 새로 발생하게 되기에 좋은 일이라고만 볼수는 없다. 앞으로 30일의 유예 기간도 있기 때문에, 향후 구체적인 방향이 나오는 것에 따라서 신중하게 대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주요 글로벌 IB, “실현가능성 저조, 바이오·제약 업계 영향 미미” 한편,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인 HSBC, 모건 스탠리, JP모건 등은 모두 이번 행정명령의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분석했다. 먼저 법률적 제약이 있다. 약가의 20%~30%를 결정하는 ‘메디케어 파트 D’에 ‘개입 불가 조항’(Noninterference clause)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HHS는 법적으로 민간 약가 협상에 개입이 불가하다. 이번 행정명령만으로는 불충분하며, 법 개정안을 입법해야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만으로는 법을 개정할 수 없다. 의회의 입법 지원이 필수적이며, 공화당 내에서도 MFN 약가 정책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시장 원칙을 위배하는 논리라는 이유에서다.
제약업계는 미국에서 가장 큰 로비 집단 중 하나인 점도 주목된다. 실제로 지난 2020년 말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도 MFN 정책이 법원에 의해 제동된 바 있다. 법적 위헌 소송이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분석된다.
나아가 ‘메디케어 파트 B’에 따른 병원 및 의료진의 반발이 예상된다. 미국내 병원은 정부와 할인 계약을 맺고 수익을 확보하는데 약가인하를 도입할 경우 환급금이 축소되어 병원 재정난을 야기할 수 있다. 병원 단체에서 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배경이다.
또한 제약사 직판 체제를 도입할 경우 중간 유통자인 PBM 및 보험사 모델의 붕괴 가능성이 있으며 제조사 측에도 물류 및 준법 부담이 올라가는 영향을 끼친다.
한편, 이들 투자은행은 이번 행정명령의 바이오·제약 업계에 대한 영향 분석으로 “미국 정부 채널 가격이 20% 인하될 경우 제약사 평균 영업이익이 15%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며 △고위험군으로 MSD, BMS, 로슈, 암젠, △중위험군으로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길리어드, 노바티스, 사노피, GSK, △저위험군으로 노보노디스크, 일라이릴리, 애브비를 들었다. 저위험군은 민간 비중이 높은 점을 판단근거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