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임정요 기자] “노화(aging)의 영역에서 우리는 모두 환자다. 현재로썬 아무리 많은 돈을 지불해도 수명을 10년 연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지난 25년간 ‘장수’(longevity) 산업에서 노화를 진단, 추적하는 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이 있었지만, 아직 임상 증명된 역노화(reverse-aging) 약은 전무하다. 수많은 회사가 실패하는 어려운 영역이며 이야말로 AI 신약개발이 도전해야할 분야다.”
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20회 바이오코리아2025에서 기조강연자로 나선 알렉스 자보론코프(Alex Zhavoronkov) 인실리코메디신(Insilico Medicine) 설립자 및 대표는
에 대해 발표하며 이와 같이 말했다.
 | 알렉스 자보론코프 인실리코메디슨 대표(사진=이데일리 임정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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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실리코메디신은 2014년 설립된 AI 신약개발 회사다. 올 3월 진행한 시리즈 E 라운드에서 1억1000만 달러를 조달, 10억 달러(약 1조4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누적 조달금은 5억 달러로, 주요 투자자 가운데 빅파마 일라이릴리의 CVC인 릴리벤처스가 있다. 한때 홍콩 증시에 상장을 추진했지만 당분간은 적기를 노리며 잠잠한 상태다. 중국 쉬저우(Suzhou) 지역에 로봇으로 자동화시킨 신약 연구소를 세워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완전 알고리즘 기반 회사로 출발한 인실리코메디신은 2019년 시리즈 B 라운드에서 3700만 달러를 조달한 것을 기점으로 자체 약물 검증까지 진행하는 회사로 발전했다. 이후 현재까지 총 22종의 후보물질을 배출했고 이 중 10종이 임상 단계에 도달했다. 임상 2상 단계 염증성장질환(IBD)파이프라인 2종, 임상 2a상을 완료한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IPF) 파이프라인 1종을 보유했다.
인실리코메디신은 2022년 한해에만 9개의 비임상 후보물질을 확정할 정도로 연구속도가 빠르다. 평균적으로 후보물질 확정에 13개월 미만의 시간을 소요하며 가장 빠르게는 9개월, 가장 느리게는 18개월 안에 후보물질을 확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이전 실적도 4건이다. 지난 2022년 중국 포순파마(Fosun Pharma)에 4종의 바이오 타깃 대상 파이프라인에 대한 AI 약물발굴 계약을 체결해 선급금 1300만 달러를 확보했다. 2023년엔 엑셀리시스(Exelixis)에 BRCA변이 암종(난소암, 전립선암, 유방암) 대상 ‘ISM3091’과 복수의 USP-1 타깃 파이프라인을 기술이전해 선급금 8000만 달러를 수취했다. 이어 2024년과 2025년 1월, 메나리니그룹(Menarini)에 KAT6 저해 유방암 치료제 ‘MEN2312’ 및 기타 항암제 파이프라인을 기술이전해 3200만 달러의 선급금을 수령했다. 신약 허가까지 완주한다는 가정하에 인실리코메디신의 기술이전 계약 총규모를 도합하면 21억 달러(약 3조원)에 달한다.
 | 왼쪽부터 윤태영 프로티나 대표, 정재호 연세대학교 교수, 알렉스 자보론코브 인실리코메디슨 대표, 송상옥 스탠다임 대표, 석차옥 갤럭스 대표, 표준희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융합연구원 부원장(사진=이데일리 임정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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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보론코프 대표는 “생성형 AI는 비디오, 사진, 음악에 있어 마법과 같다. 하지만 의약산업에서는 마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실리코메디신이 온 길을 따라오려면 성패와 무관하게 임상 2상을 완료하기까지 2억 달러~3억 달러(약 4000억원)가 필요할 것이고 10년이 걸릴 것이다. 전통적인 신약개발보다는 저렴하겠지만 여전히 임상 검증에는 시간과 돈이 소요될 것”이라며 “AI 신약개발로는 1.5년 정도 연구시간을 아낄 수 있고 실패확률을 줄일 수 있다. 중국처럼 15만명 연구원이 물질합성을 해줄 수 있는 곳에서는 최대 2.5년까지 기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보론코프 대표는 “다만 딥시크(Deepseek)가 보여줬듯이, 데이터가 부족해서 새로운 약물을 디자인할 수 없다는 주장은 틀린 말이다. 초기에는 고품질 데이터가 필요하겠지만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의 끝없는 연산을 통해 검증된 모델이 늘어나고 AI는 고도화된다”고 말했다.
이날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표준희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융합연구원 부원장을 사회자로 석차옥 갤럭스 대표, 송상옥 스탠다임 대표, 윤태영 프로티나 대표, 정재호 연세대학교 교수가 자보론코프 대표와 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석차옥 갤럭스 대표는 “갤럭스는 올 3월 AI 기반 드노보 항체 설계를 공개한 바 있다. 전통 방식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타깃에 물질을 만드는데 성공했고 이 물질만 보고 어떤 기술을 썼는지와 무관하게 제약사의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송상옥 스탠다임 대표는 “AI 신약 디스커버리는 10년 이상 성숙된 분야로 많은 혁신(breakthrough)을 만들어가고 있다. 초거대 사전학습모델, 파운데이션 모델 등에 기대감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실제 약 개발에서는 AI의 일반화 성능이 부족한 점, 그리고 실험과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하는 신약개발의 숙명에 많은 돈과 시간이 투입되어야 하는 난제가 있다. 인실리코메디신이 좋은 성과를 내는 것처럼, 당장 AI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단기에 결과를 내놓으라고 하기 보다, 영역별 전문가(domain expertise)의 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AI는 가설을 세워 새로운 물질을 만들고 신약개발 전문가들은 이를 증명하는 유기적 협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재호 연세대 의대 교수는 “기존의 컴퓨터 보조 약물 개발에서도 계산자원을 활용한 신약개발은 진행되고 있었고, 다만 화학 영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AI가 신약개발에 들어오면서 드노보 타깃을 찾는 단계부터 궁극적으로는 임상시험의 설계 및 최적화 단계까지도 힘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 같은 장밋빛 기대에 앞서 실질적으로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과연 인공지능이 멀티모달 데이터를 어떻게 통합해 분석할 것인지다. 당장 DNA, RNA 단백질의 대사체학 데이터를 통합하는 것도 상당히 어렵다. 데이터의 특성도 다르고 스케일 이슈, 노이즈 구조도 완전히 다르다. 정보를 잃지 않으면서 편향되지 않은 훈련 데이터셋을 어떻게 만들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두번째는, 임상 검증 데이터의 신뢰성을 표준화시키는 것이다. 세상에 나쁜 약은 없고 잘못된 임상시험만 있다. 인공지능은 후기 개발 단계에서 정교한 환자 선정으로 신약개발 전주기 가치사슬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윤태영 프로티나 대표는 “신약개발은 타깃 디스커버리, 약물 디자인, 약을 세포주나 동물모델에 실험하는 비임상, 마지막으로 실제환자들에게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는 임상, 이 네가지 단계로 구성된다. 앞의 두 단계는 AI에서 상당한 진전이 이뤄졌고 개인적으로 결국 약물의 검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신약 회사들이 최근 펀딩을 잘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신약개발의 확률이 떨어지기 때문이고. 약물 디자인에서 비임상 시험, 비인상 시험에서 임상 시험으로 진행 될때 생각지 못했던 독성이 나타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AI로 독성 예측이 가능한가에 대해서 아직 확신은 없다. 다만 개발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종국에는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제20회 바이오코리아 2025는 7일부터 9일까지 3일간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다. 컨퍼런스, 인베스트페어, 전시를 통해 비즈니스 협업 기회를 모색하는 자리다.
전시에는 20개국 323개사가 429개의 부스를 연다. 국내 셀트리온, 에스티팜, 유한양행, 에이비엘바이오, 한림제약 등과 해외 존슨앤존슨, 암젠, 우시바이오로직스, 후지필름 등이 참여하고 호주, 미국, 네덜란드, 태국, 캐나다, 대만, 스웨덴, 일본, 독일 9개국에서 총 70개사가 참여한다. 우수 기술을 보유한 국내 유망 중소벤처기업 24개사를 소개하는 라이징파빌리온도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