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석지헌 기자]
엔지켐생명과학(183490)이 백신 생산 관련 부서를 폐지하면서 사실상 백신 사업 정리 수순에 돌입했다. 당초 백신 사업에 쓰기 위해 마련한 유상증자 공모자금 1685억원 중 남은 자금에 대한 사용 목적에 관심이 모인다.
| 지난해 2월 엔지켐생명과학이 공시한 공모자금 세부 사용목적.(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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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이데일리 취재 결과 엔지켐생명과학은 지난달 말 글로벌 백신 생산 및 상업화 전략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인 글로벌백신사업본부를 폐지한다고 내부 공지했다. 엔지켐생명과학이 글로벌백신사업본부장으로 영입한 SK바이오사이언스 엔지니어링TF장 출신 이홍균 부사장은 대기발령 중이며 상반기 안으로 퇴사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백신 본부 소속 직원들 대부분 퇴사했거나 대기발령 중이며, 일부는 다른 부서로 배치된 것으로 취재됐다.
엔지켐생명과학은 앞서 지난 2021년 11월 인도 글로벌 제약사 자이더스 카딜라와 코로나19 pDNA백신 위탁생산(CMO)을 위한 ‘자이코브-디’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했으며, 자이더스로부터 자이코브-디의 제조공정과 원·부자재, 임상 및 비임상 자료 등 상세한 기술자료를 확보했다. 지난해 1월에는
한미약품(128940)과 자이코브-디 백신 DS(원액) 위탁생산을 위한 기술이전과 설비 준비 계약을 맺었다. 오송 제2생명과학단지 내 부지 1만720㎥(5300평)에 백신 생산 공장 건설을 위한 토지 매입도 마쳤다.
하지만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 전환으로 시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백신 생산 사업은 1년 넘게 답보 상태다. 회사는 자체적으로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백신 연구소를 설립하고 인재 영입 등에 나섰지만 결국 기술조사 차원에서만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엔지켐생명과학 관계자는 “국내외 백신 환경, 정부 정책 변화, 투자자 반대 등으로 백신 사업을 발전적으로 추진하기엔 현실적인 제약이 많다”며 “주주들이 최근의 엔데믹 상황을 고려해 백신 사업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많이 주고 있다. 현재 백신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엔 종합적 여건이 매우 열악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진전사항도 특별히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엔지켐생명과학이 백신 사업을 위해 마련한 유상증자 자금이다. 회사는 2021년 9월부터 추진해 온 유상증자 증권발행결과를 지난해 3월 2일 공시했다. 당초 3164억원을 공모하려 했지만 1%대 저조한 청약률에 모집금액은 1685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엔지켐생명과학의 지난해 2월 투자설명서를 보면 백신 생산시설 신축에 552억원, 자이코브-디 백신 제조 라이선스 기술이전 계약에 따른 백신 제조 비용으로 493억원, 자이코브-디 기술이전료와 로열티 지급 277억원, 백신 생산 관련 전문인력 채용 212억원, 자이코브-디 코로나19 백신 공급 및 판매 확장을 위한 마케팅 비용과 백신 등록 프로세스 비용으로 각각 100억원, 50억원 등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공모자금 대부분을 백신 사업에 쓰겠다고 밝힌 만큼 백신 사업에서 손을 뗄 경우 투자자들에게 남은 자금에 대한 사용 목적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엔지켐생명과학 측은 유증 자금을 회사 매출을 신장시키고 영업이익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쓰기 위해 고민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투자자 요청사항을 수렴한 후 새 사업계획을 마련해 조만간 투자자들에게 알릴 것으로 예상된다.
엔지켐생명과학 관계자는 “백신의 사업성과 수익성, 투자자 의견 수렴 및 투자자 보호, 기업가치 제고 등 여러 상황을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며 “유증 자금에 대해 투자자 요청사항을 수렴해 투자자 이익을 보호하며 사업성과 수익을 검토해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방향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있다”고 말했다.